갤러리 자작나무

류인선, <오래된 풍경>
2013. 4. 1 - 4. 10
갤러리 자작나무 사간점
OPENING RECEPTION _ 2013. 4. 2 5:00PM
02. 733. 7944

류 인 선 Ryu, In-Sun

198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91 동대학원 수료
2010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사상문화학과 졸업

| 단체전

2012 한국화회전, Gally LVS
2011 한국화회전, 조선일보미술관
서동요전, 부남미술관
나눔과 어울림전, 부남미술관
2010 한국화회전, 동덕미술관
한국적 모티브로 보는 이미지전, 상명대학교 책사랑갤러리
2009 SHA-SHA,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200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개교62주년 기념 동문전, MoA(서울대학교미술관)
2007 현대미술의 소통전(선화예고 개교30주년 기념), 율갤러리
2004 The New Present 展, 세종문화회관 신관1전시실
2003 화연전, 경인미술관
2001 화연전, 덕원미술관
2000 芳友會展, 법륜사미술관
1999 새로운 형상과 정신전, 덕원미술관
1998 화연전, 경인미술관
1990 한국 젊은 여류작가전 Seoul & Berlin, 베를린시립미술관
4인 일상과 작업전, 관훈미술관
1989 새로운 형상과 정신전, 관훈미술관
청림전, 동덕미술관

오래된 풍경

류 인 선

언제인가부터 ‘무엇을 그릴까’하는 문제가 꽤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림은 어떤 효용가치가 있을까?’에서부터 ‘나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하는 등 진즉 생각해보았어야 할 문제들을 한참 그림 그리기를 쉬다가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해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시골 풍경이 생각났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의 풍경입니다. 네다섯 살부터 예닐곱 살까지 자주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모님과 함께 지냈는데, 그 시간들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 때는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무료함과 답답함, 그리움이 더 컸을 거 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책을 읽거나 연상이 되는 일을 만나면 또렷이 떠오르는 그 시절 풍경들 속을 수도 없이 오갔던 거 같습니다. 또 어느 때인가 그 풍경은 나만이 알고 있는 거라는 걸 깨닫는 순간, 아늑한 나만의 방이 새로 생긴듯한 기쁨과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어떤 기억이 나는지 반추해보았더니 생각보다 다양하고 소소하며 오감을 자극하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토담에서 시작해서 길을 가기 시작하면 시내와 풀과 나무, 수많은 얼굴들까지 마음속 영상은 끝없이 이어지고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라는 시인의 말이 그대로 제 마음이 됩니다. 지금은 모든 풍경이 거의 바뀌어버렸는데도 여전히 옛날의 찬란한 풍경의 잔상이 보여서 가슴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畵論 중에 ‘胸中成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붓을 들어 대나무를 그리기 전 마음속에 대나무가 자라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제야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한 느낌입니다. 눈으로 景物을 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마음의 눈을 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畵家인 나는 우선 나의 내면으로 이르는 문을 열어야 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얽매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되었든 글자 그대로 ‘촌스러운’ 모습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굳이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삶에서 위축되고 서늘해져가는 제 마음의 귀향처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부터 그림 안에서 마음이 쉬어가기를, 그리고 느리고 조용한 힘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았습니다.

동양화, 한국화로 불리는 제 전공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료인 紙筆墨을 여전히 사용했지만, 여기에 콩 즙과 들기름도 주요한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기존의 물감 색과 다른 색감을 찾다가 콩 즙과 기름을 칠한 데서 얻어지는 맑은 노란색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얇은 한지에 그것들을 칠했을 때 얻어지는 반투명한 느낌을 이용하여 그림 위에 다시 얇은 한지를 바르고 그려서 먼저 그린 것이 背彩 효과를 갖도록 했습니다. 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흰 화면이 아니라 먹으로 바탕칠을 한 다음에 호분을 섞은 밝은 물감으로 그렸고, 검은 바탕칠을 살리기 위하여 기름과 콩 즙을 혼합하여 칠한 후 다시 그렸습니다.

心相을 좇아가다보니 대략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색의 힘을 빌려 느낌을 강조하다보니 먹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어 工筆彩色畵도 아니고 맑은 水墨畵는 더더욱 아닌 그림이 되었는데, 제 성정에 맞아서 택한 재료들이기에 지속해서 작업하여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려 합니다. 어떻게 더 절제되고 간결하게 표현하며, 작은 필획 하나에도 힘을 내포하며, 맑게 표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함께! 소박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제 마음의 잣대로 삼아 그림을 그리며 오랫동안 뜸들이고 게을렀던 마음을 정리해 봅니다.